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Exodus: Gods and Kings) - 지팡이 대신 칼을 쥔 모세 


 비행기에서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봤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글로 옮기는 이유는 이 영화가 준 신선한 느낌 때문이다. 지금까지 성경의 출애굽기를 영화로 본 게 두 개다. 찰턴 헤스턴 주연의 "십계"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 두 영화가 하느님의 기적을 신비롭게 영상화 했다면 이 영화는 좀 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볼 계획이 있는 분들은 더 이상 읽지 마십시오. 다량의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존경받는 장군이자 왕자였다. 어느 날 람세스는 모세가 히브리 노예의 후손임을 알게 되고 모세를 추방시킨다. 람세스와 람세스의 어머니는 파라오인 람세스 보다 모세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기에 잠재적인 정적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추방된 모세는 가정을 꾸리고 조용한 삶을 살던 중 하느님의 계시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가족을 버리고 기나긴 히브리 노예 해방 투쟁 전선으로 뛰어든다. 모세를 떠나보내는 아내는 "서방님 부디 몸 조심하시고 꼭 승리하십시오. 아들은 제가 잘 키우겠습니다" 라고 말할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디서 헛것을 보고 와서는 가족 내팽개치고 가냐는 투로 떠나 보낸다. 참 현실적인 모습이다. 


 이 영화에서 하느님의 기적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은 없다. 오로지 모세만이 어린이의 모습을 한 하느님의 메신저와 소통할 뿐 그 누구도 하느님의 기적을 보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거나 모세를 신처럼 따르지 않는다. 하나는 예외지만. 


 너의 동족을 노예의 삶에서 해방시키라는 신의 계시에 따라 모세는 대 이집트 무장 게릴라 투쟁에 돌입한다. 목표는 이집트의 백성들의 민심을 이반시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 게릴라 투쟁에 따라 람세스의 보복도 이어진다. 이집트 백성과 히브리 노예들 모두 고통을 겪게된다는. 







모세는 신께 중간 보고를 하러 간다. 모세는 나름 열과 성을 다해 투쟁의 성과를 올렸지만 이에 대한 신의 평가는 냉혹하기 짝이 없다. 


 신 : 너는 실패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간 수십년도 더 걸릴 거야. 

모세 : 그러는 당신은 저들의 노예 생활을 400년이나 지켜보고 있었습니까? 

신 : 너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걸 구경이나 하거라. 


마운드에서 모세를 강판시킨 신은 몇 가지 기적을 행한다. 하지만 이런 기적들은 이집트인들이 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해 버리고 신의 뜻을 받아들이게 하지 못한다. 반면에 이런 기적들은 이집트인들 뿐 아니라 히브리 노예들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주게 된다. 


다른 영화나 성경 이야기에서 이런 하느님의 기적들을 접할 때 가졌던 통쾌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 강물이 붉게 물들어 식수가 부족하고 메뚜기 떼가 모든 걸 먹어치워 식량이 부족한데 어찌 히브리 노예들의 삶이 편안할 수 있을까? 이집트인들 보다 히브리 노예들이 더 큰 고통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보다 못한 모세는 신을 찾아간다. 


 모세 : 제발 그만두십시오.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더 이상 보기 힘듭니다. 

신 : 아니야. 더 강력한 게 필요해. 


모세의 신은 모세를 통해 히브리 노예들의 아이들을 보호하게 하고 이집트인들의 모든 아이들의 숨을 거두게 한다. 물론 모세는 람세스틀 찾아가 최후의 통첩을 했다. 지금까지의 기적을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람세스는 최후 통첩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을 잃는다. 


이 순간까지 이집트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그저 사람들의 투쟁과 기상 이변일 뿐이었다. 히브리 노예들의 무장 게릴라 투쟁과 이집트 정부군의 보복. 각종 기상 이변일 뿐이었다. 람세스가 강력한 신의 존재를 믿는 계기가 있었다면 아마도 아들을 잃기 전에 노예 해방을 명했을지도 모를텐데. 


집 앞에 양의 피를 바른 히브리 노예들은 아이들이 무사했고 그러지 않은 이집트인들은 모두 아이들을 잃었다. 아들을 잃은 뒤에야 히브리 노예들의 신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람세스. 







 람세스 : 우리 자식들이 모두 죽었어. 이게 너희 신이 한 일인가? 너희는 어찌 이토록 잔인한 신을 섬기는가? 

모세 : 람세스. 히브리인들의 자식들은 죽지 않았어. 

람세스 : 모두 이 땅을 떠나라. 


 여기서 잠깐 옆 길로 새보자. 구약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참으로 잔인하다. 이집트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어야 했을까? 히브리 노예들은 모두 선하고 이집트인들은 람세스와 모두 동일시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집트인들 역시 람세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일 뿐이고 다만 노예들 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수준일 뿐이다. 이들이 람세스의 결정 때문에 아이들을 잃어야 한다는 건 지금의 가치관으로 볼 때 너무나도 잔혹한 일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인간이 타락했다 하여 모든 인간을 죽게하는 것도 그렇다. 그 중에 선한 사람들도 함께 죽어야 했다. 왜 이리도 잔인한 이야기가 기록되었을까? 신을 믿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신을 두려워하게 하는 거다. 이토록 무서운 신을 믿는다면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게 될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아담이 따먹었던 열매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니들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니들도 다 죄가 있어. 아담은 내가 창조했지만 그 책임은 후손인 너희들이 지게 될 게야. 







 히브리 노예들은 람세스 맘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가나안 땅으로 떠난다. 정말 힘들고도 먼 여정이 시작됐다. 


람세스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복수심에 불타올라 이들에 대한 추격을 시작한다.  람세스의 추격이 시작된 걸 알고 모세는 당황한다. 전에 자신이 갔던 길로 가면 이집트군의 전차에 따라잡힐 것 같고 산을 거쳐 간다면 이집트군의 추격은 늦출 수 있겠지만 히브리 노예들 또한 험난한 길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길은 모세가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홍해를 건널 수 있을지 모른다. 


모세는 신께 도움을 청한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어느 길로 가야하나이까?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모세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던 신은 모세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던 것일까? 결국 모세와 40만 노예들은 홍해 바다 앞에 다다른다. 배 한 척 없이. 뒤에서는 람세스가 그들을 학살하러 달려오고 있다. 


 이 영화에서 모세는 다른 영화처럼 신으로부터 받은 지팡이가 없다. 람세스의 부친으로부터 받은 검만 들고 싸워왔을 뿐.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들을 해방시킬 사람이 온다는 예언을 믿었고 그것이 모세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존경받는 이집트 장군이자 왕자였기에 히브리 노예들 사이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세가 지팡이로 기적 같은 걸 행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를 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모세의 이야기에 따라 아이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바다를 건널 방법이 없는 모세. 신은 대답이 없고. 모세는 멘붕에 빠진다. 모두 지쳐 휴식이 필요한 상태. 모세도 잠을 자기 시작한다. 


홍해 저 편으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며 충격음을 낸다. 그리고 홍해 물이 그 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물은 많이 낮아졌지만 물살은 여전히 빠르다. 모세는 지금 빨리 건너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반대한다.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오. 우린 더 이상 노예가 아니란 말이오. 모세는 지혜롭게 설득하여 사람들이 홍해를 건너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홍해를 건넌 모세는 또 다른 걱정에 직면한다. 40만 명의 히브리인들을 하나로 묶는 국가의 법 질서도 필요하고 새로운 땅에서 만나게 될 원주민들과의 전쟁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까닭이 있겠는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이 영화는 그동안 성경의 출애굽기를 접하면서 간과했던 현실과 신의 기적을 같이 이야기한 영화였다.




Posted by 필명 : 껌사세요